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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ading

김애란 - 비행운

얼마전에 한국 소설 작가들은 뭔가 호감이 덜 간다 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취소한다. 김애란 작가는 좋다.


올해, 아니 2013-2014년에만 공지영, 김영하, 황정은, 이기호,이승우 는 내 취향이 아니었고, 천명관, 신경숙 작가정도는 괜찮다 정도였는데 김애란 작가의 글은 참 좋다. 비행운이란 단편모음집 책을 봤는데, 그 중 5개의 소설이 참 좋았다. 그 외에도 별도로 나온 침묵의 미래까지. 대부분의 단편소설들이 맘에 들었다. 특히 거창하지도, 잔혹하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거나 부드러운 어투로 독백하듯이 삶을 그려내는데 그게 참 슬펐다. 


소설적 구조도 좋고, 등장인물중 허투루 나오는사람이 없이 a가 나오면 소설 어딘가에서 꼭 a가 중요하게 나오는 것도 좋지만. 끝까지 슬픈 반전을 다시 던져주는 것도. 개인의 얘기지만 알고보면 다 사회의 얘기라는 건 덤. 좋다. 정말.


사실 단편모음집 책 제목이 비행운인데 책 안엔 비행운이란 내용의 단편소설이 없어서 의아해 했는데, [하루의 축]을 보고 나서 이해를 했다.


정차된 항공기들은 모두 앞바퀴에 ..... 관제탑 너머론 이제 막 지상에서 발을 떼 비상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는 중일테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얼마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안도의 긴 한숨 자국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이었다. ...


결국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들은 대부분 혼신의 힘을 향해 중력을, 세상을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였다. 


우선 [너의 여름은 어떠니] 에서 보여주는 풋풋한 학부생때의 짝사랑 -  그리고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 그런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 버리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게 할 정도로 인간적이며 정이 있던 선배.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된 그 선배에 대한 설렘은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 라는 내용이 참 좋았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에서는 무엇보다도 조카가 오랜만에 만난 삼촌에게 '당숙모는 잘 계시죠' 라고 묻고 주인공이 잘 있다고 대답하는 그 거짓된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장면. 나쁜 의도 없는 예의바른 친절함 - 하지만 상대에게 관심이 없는 - 현대사회의 예절이 더 가차없이 잔인해 보였다.


[큐티클] 은 예전에 ㅁㅈ가 썼던 블로그의 글이 생각났다.



내 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울에 갓 도착한, 스스로의 구매력을 어색해 하던 스무 살 때보다 건강하다.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 소비는 조심스럽고 수줍게 진행됐다. 장을 볼대 일반 화장지 대신 무형광물질 티슈를 사고 탄산음료를 집었다 생과일주스로 바꿔들었다. ...... 처음에는 좀 죄책감이 들었다. 생필품을 절약하지 않으면 돈 모으기가 힘든데, 씀씀이가 커 눈만 노아진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변기에 앉아 화장지를 끊을때마다, ... 전에 없던 설렘과 만족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기분'도 구매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걸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낭비가 아니라 경제적인 행복이라고, 술값으로 몇 십만원 씩 쓰는 남자들보다 낫지 않느냐 합리화하며. 이건 오래 쓸거니까. 이건 자주 사용하는 거니까, 라는 식의 근거로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골라 담았다. .... 모든게 중요하고 많은게 필요했다. 나는 그 필요에 쫓기지 않았다. 필요에 의지했다. 소비는 내가 현재 대도시의 왕성한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그리하여 뭔가 지불할때 나는 더 잘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 


사실 나 자신도 쓸 수있을때 좋은 걸 쓰고,이왕이면 자신을 가꾸는건 좋은 걸 쓰는게 어때 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냥 이 소설에서 암시하는 내용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한번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글이었다. 


덤으로, 이 책의 모든 소설 중에서 마지막 결말이 가장 (유일하게..) 따뜻한 소설이었다. 특히 캔을 딸때 내 손톱도 아픈 느낌이 전해져서 좋았다. 


그러고 보면 침묵의 미래도 참 좋다.


[호텔 니약 따] 란 소설은 둘이서 오랜 기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생길만한 에피소드들을 편하게 술술 풀어쓰는 것도 참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1700년대 바흐가 자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라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라는 말이 참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여행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가슴아프고 좋았던 책은 [서른] 이다.




그런데, 그런 줄 알았는데,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팔고 있는게 물건이 아니었더라고요. 제가 팔고 있던 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끝까지 그 일이 결국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러 애썼어요. 하부 판매원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모든 판매원에게 득이 되는 일. 그러니까 나 역시 그 순환에 기여하고 그 구조를 받쳐주면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커진다고 착각했던 거죠 그리고 제가 그렇게 단순한 논리에 매료된 건, 피라마드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내가 되라라곤 생각치 않았거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요.

이 글을 보면서, 피라미드 조직에 빠졌다 탈출한 사람의 일기-편지-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를 비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니면.. 혹은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는. 


덤으로 노량도란 말이 인상 깊었다. 합격해야 탈출할 수 있는 섬.. ㅇㅅ이와 ㅇ도 빨리 탈출하길.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런걸 잘 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마흔의 한갑의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게 될지  어떤 말을 붙잡고 어떤 믿음을 감당하며 살지 모르겠어요 바뀌는 건 상황이 아니라 사람일까요.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바꿀 수 없게 만드는 건 무엇일가요. ...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거 같다고. 조만간 다시 옛날이 될 오늘이, 이렇게 지금 제 앞에 우두커니 있네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이 글을 보면서 뭐랄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참 예쁘게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보면서 슬픈 감정이 솟아오르게 했다.


사실 더 잘 쓰고 책이 좋다고 표현을 하고 정리를 하려 했는데, 요즘 너무 바뻐서 집에 와서 정리를 하려니 너무 피곤해서 딴짓만 하다 자다가.. 오늘은 그래도 맘잡고 좀 정리를 해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네. 그냥 인상깊었던 부분들만 복사하고 간단히 평 한두줄만 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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