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4일째는 사실 일정이 붕 떠 있던 하루였다.
로마를 계속 돌아보자니 그 트레비강가부근과 아피노 가도 빼고는 굵직굵직한 곳은 다 돌아봤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 가본 곳이 참 많았는데... 만약 이 날이 다시 온다면 로마를 좀 더 구석구석 둘러봤을 듯 하다)
그러면 나폴리가 당일 치기 하기 좋다는데 나폴리가 은근 볼게 없다는 소리도 들었던 기억이 났었다. 그럼 폼페이를 갈까? 근데 폼페이는 설명 안들으면 완전 어리버리하다가 온다는데... 아니면 어제 만났던 형이 남부해안(소렌토,포지타노,아말피)를 강력추천하는데 그 곳을 갈까? 라고 고민을 하다가
일단 나폴리를 가서, 나폴리에서 소렌토->포지타노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냥 나폴리를 보고 아니면 남부해안가를 돌자! 라고 결정.
그렇게 테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침 9시 나폴리 기차표를 예약하고 보니 유레일 패스는 처음 쓰는 경우 활성화를 시켜야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레일 패스를 활성화(activate)시키려 줄을 섰는데, 예상외로 줄이 길어서 30분 넘게 기다리다 보니 9시 기차를 놓칠 뻔 했다; 이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더라니 -_-
아, 이탈리아의 경우 대부분의 기차가 고속철도라서, 예약을 따로 하고 10유로를 따로 냈어야 했었다. 물론 R로 시작하는 완행열차(?)는 유레일패스만 있으면 탈 수 있으나, R 기차는 배차간격이 매우 길었다. 그리고 소요시간도 1.5-2배정도 더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쨌든, 나폴리 역에 10시즈음 도착. 관광안내 센터가서 포지타노 얼마걸려요? 하고 물어보니까 친절하게 종이에 써주면서 가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그런데...그 사람이 1. 소렌토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40-50분) 2. 시타 버스를 탄다 (50분) 이라고 적어줬는데,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포지타노로 가는 방법이 2가지가 있고 2가지 모두 소요시간이 비슷한걸로 이해를 했다. 그래서 시간도 별로 안걸리는데 남부해안 투어나 함 해볼까? 라고 생각하고 기차를 타러 갔다,
근데, 포지타노를 가러 사철역을 가는 길부터 헤메기 시작; 경찰관이 알려준 방향으로 갔으나 역이 보이지 않아서 또 30분쯤 헤메고 사철역에 도착. 그런데, 매표소 아줌마에게 포지타노 가는 표가 있냐고 하니까 없단다. 아까 관광안내센터에서 보여준 종이를 보여주면서 포지타노 어떻게 가냐고 물어봤는데 역무원이 영어를 못해서 의사소통 불가 -_- 그런데 다행히도 내 뒤의 영어를 할 줄 아는 할머니들의 도움으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이때, 내가 그 종이를 잘못 이해했다는 걸 깨닫고, 포지타노 가는데 은근 오래걸리겠구나...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래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포지타노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경제학에서도 매몰비용은 무시하라고 가르쳤었는데 왜 그때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고 포지타노를 가려고 했을까...)
그 난리를 치고 탄 기차. 그런데, 생각보다 40-50분이면 도착한다던 열차는 약 1시간 20분쯤 걸려 도착. 역 앞에 있는 시타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로 향해 출발했다. (참고로, 왠만하면 오른쪽 맨앞에 앉는 걸 추천한다. 경치가 장난이 아니다.)
괜히 남부해안남부해안 하는게 아니라는 걸 버스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알 수 있었다. 정말 경치가 좋았다! 알고보니 이 해안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고 디스커버리에서 죽기전에 가봐야 할 절경 top 10중 하나로 꼽은 곳이라고 한다. 왼쪽 옆에는 절벽과 산, 오른쪽 옆에는 해안절벽과 바다. 해안도로는 딱 차 두대 아슬아슬 지나갈 만한 좁은 길. 절벽가에 오밀조밀 세워진 도시와 보기만 해도 아찔한 해안절벽, 해안가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호텔과 레스토랑들, 그리고 지중해 바다..는 최고였음.절경이었다.
한가지 신기한건 그 좁은 길에, 꼬불꼬불한 코너가 계속 나오는데 버스 기사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정말 잘 코너를 돌았다; 심지어 우리나라라면 코너마다 경계거울(?) 이 있을텐데 그것도 없는데도 경적을 울려대며 커브를 쑹쑹 돌며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버스 아저씨의 위엄.
어쨌든 그렇게 포지타노에 도착했는데.. 50분 걸린다더니 1시간 20분이 걸렸다; 이미 돌아올 기차시간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이왕 늦은 김에 아말피까지 가지 뭐...라는 천하태평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쨌든 다시 포지타노에서 30분쯤 더 걸려 아말피 도착.
사실 아말피를 간 이유는 중세 이탈리아 4대 해양도시중 하나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 이탈리아 해군기에는 중세 이탈리아 4대 해양도시(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아말피) 의 문장이 있다. ) 시오노 나나미가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베네치아에 관한 역사...소설?)의 첫 챕터에서 설명이 잠시 나온 그 도시가 그렇게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질까 라는 환상을 품고 간 도시였다.
산자락에 오밀조밀하게 자리잡은 해양도시가 참 신기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시간을 보니... 문제는 바로 버스를 타고 소렌토로 돌아가도 로마로 돌아갈 기차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대충 도시를 둘러보고 소렌토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버렸다 ㅡㅡ 상/하행 버스 정류장이 따로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그래서 다음 버스가 오려면 30분이 더 걸리는게 아닌가... 어찌저찌 나폴리로 돌아왔지만, 결국, 기차를 놓치고야 말았다 -_-
그래서 다음 기차표를 다시 예매하고 나왔는데, 플랫폼에 가보니 내가 예매한 기차는 무려 70분이나 연착예정... 망했어요.
그리고 사실 남부해안이 멋있긴 했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려 버스타고 가는 시간만 길었지 실제로 경치를 감상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고, 아이폰 외장배터리가 빠지질 않고, 기타등등 여러 이유로 마음이 좀 뒤숭숭하고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멋진 남부해안을 평안한 마음으로 감상하지도 못다.
게다가 남이 추천한 곳을 와서 그런지, 처음엔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른 곳을 갈껄 왜 내가 그 사람 말을 듣고 여길 왔을까 라고 남 탓을 하게 되었다. 역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게 여행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인듯.
이런 이유로 엄청 우울한 상태에서 열차는 늦고 배는 고프고 짜증도 나고 혼자 더 우울해져서 혼자 터벅터벅 역 옆에 있는 맥도널드로 갔다.
혼자 빅맥 세트를 먹는데 왜 그리 기분은 나아지지 않고 최악이었을까. 꾸역구역 빅맥을 우적우적 먹고 와이파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먹으면서 오늘 실수들을 해서 일정이 꼬였다는 자책을 좀 하다가, 그러다가 예전에 한 실수들이 막 떠오르고... 게다가 옆 테이블은 큰 그룹이 화기애애하게 얘기하고 있는게 더 대비되어서 우울해지다가 그냥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음... 여행다니면서 4일째인데 벌써 두번째로 서러워서 울고 싶다니 참 여행 어떻게 하려고...
이래서 여행을 혼자하면 힘들다는 건가 보다. 감정의 기복을 다스려줄 사람이 필요할 때 혼자는 너무 외롭다.
어쨌든 궁상 그만 떨고 슬슬 8시쯤 역으로 왔는데, 그 70분 딜레이된 열차는 아직도 오지 않고, 그 다음 9시 출발 기차도 아깐 정상이었는데 10분 딜레이.. 점점 딜레이가 길어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예약한 기차표를 버리고 8시에 출발하는 R 등급 기차(무궁화호 완행열차수준)을 잡아타고 로마로...
그런데, 기차에서 한국인을 만났다. 그냥저냥 이런저런 잡 얘기를 하다 보니 우울한 기분이 가셨다. 수다로 긴장을 푼다는게 이런 의미구나. 싶었다. 두번째로 만난 한국인이었는데 참 고마웠다.
11시에 테르미니 역에 도착해서 맥주 한캔 사들고 다시 어두운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뛰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참 정신없이로마의 마지막 밤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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