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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영국-이스탄불(2011.2.3-13)

이스탄불 여행기 5 - 콘스탄티노플, 예디쿨레

지난번에 썼던 이스탄불 여행기 4 - 갈라타 다리, 갈라타 탑, 콘스탄티노플 성벽, 예디쿨레 에서... 갈라타 탑까지만 쓰고서 마쳤는데 제목에는 콘스탄티노플 성벽, 예디쿨레가 있는 오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이스탄불 여행기를 마무리 지으라는 그런 거창한 계시는 아닐 테지만, 그냥 생각난 김에 쓰기로 하자...

트램을 타고, 톱카프 역에서 내리면 그 유명한 콘스탄티노플 성벽이 보인다. 1459년에 멸망당하기까지 절대 뚫린 적이 없는 육지쪽의 콘스탄티노플 성벽. 아랍, 불가리아, 러시아군등의 수많은 공격자들을 좌절시킨, 이중-삼중의 성벽으로 대포가 발명되기 전까지 수많은 적들을 물리친 성벽이다.(바다쪽은 4차 십자군 때 뚫렸던 적이 있다.)

역사책을 볼 때마다 나오는 그 유명한 3중성벽이 어떤건가 정말정말정말 궁금해서, 좀 무리하게 성벽쪽으로 왔다.





이렇게 보존이 잘 된(혹은 복원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완전 파괴되고 무너진 성벽 부분들도 있다..


일단, 정말 그 삼중 성벽을 봤다는 것은 거짓말 좀 섞어서 완전한 감동이었다. 아 역사속의 한 순간에 있는거 같아...라는 오버스러운 감정(허세감)을 가지는 것은 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겠지...

근데 진짜 성벽을 보니, 대포가 나오기 전까진 정말 난공불락이라고 할 만 하다. 몇백미터 마다 이어진 탑과 2-3중 성벽이라니... 낮은 성벽 하나를 넘으면 더 높은 성벽이 나오고 그 성벽에서 화살과 돌을 쏟아붙는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저 마지막 사진의 무너진 성벽은... 멸망한 제국의 뒷모습을 보는거 같아 쓸쓸했다. 무너진 성벽에 쌓인 눈과 잡초,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펄럭이는 정복자의 후손인 터키의 국기.

뭐 어쨌든 그런 성벽이 좋아서, 그 트램역에서 예디쿨레 까지 걸어갔다. (사실 버스를 타려 했는데 버스가 안보였다... 걷는거 정말 좋아하는 사람/ 혹은 성벽이 정말 좋은 사람빼고는 걸어가지 말것.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6km라고..)

아, 예디쿨레가 무엇이냐면, 육지성벽과 마르마라해가 만나는 곳에 있는 요새이며, 비잔틴 제국 시대엔 7개의 탑과 황금문이 있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때에는 감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만약 오고 싶다면 국철을 이용해서 예디쿨레 역에서 내린후 걸어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불편한 교통과 시간을 감안하면, 시간이 모자랄땐 꼭 볼만한 메리트는 없지만, 반면에 바닷가에 접해있는 요새라는 점. 특히 요새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전경은 꽤 아름답다...만, 갈라타 탑, 혹은 보소포로스 해협투어하면 들를 수 있는 루멜리 히사르가 더 좋고 크고 아름답고 교통도 편하다. 꼭 올 필요는 없음.

그리고 나는 중세시대의 요새라는게 좋았음(...)

참고로, 요새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상당히 좁고, 옆에 난간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날 눈이 왔고, 그 후에 날이 좋아져서 눈이 일부는 녹고 일부는 남아있고 해서 계단이 참 미끄러웠는데, 겁이 많아서 속으로 덜덜 떨면서도 부득부득 올라갔다 -_-

예디쿨레의 모습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탑의 흔적.


올라왔는데도 요새성벽은 참 좁아서 다시 한번 떨어질까봐 불안에 떨었었다.


하지만, 바라보는 전경은 참 좋았다.








이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말 계단이 좁다. 2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 그리고 성벽위의 공간도 3사람정도가 일렬로 늘어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옛날에 요새에서 전투때문에 뛰어다니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뻘 생각을 했다. 


(수정 : 난간이 있는 계단이 따로 있었습니다.......결국 괜히 혼자 난간없는 계단 걸어가면서 무서움에 떨고 있었음..) 



본격 역사-전쟁 흔적 찾아돌아다니기.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국철을 타고 시르케지 역으로 왔는데, 국철은 정말 오래되고 낡고... 시골 완행열차같았다.
시르케지 역은, 예전에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시작하는 역이었다고 한다. 터키는 철도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 오리엔트 특급이 다녔던 시르케지 역도 현재는 한산하고 낡은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