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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ading

[책] 번역의 탄생.

뭐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실용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쓰잘데기 없는 책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 있듯이, 이 책은 한국어 번역론인 동시에 어느정도 넓은 문화사적 맥락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왜 이런 실용서에 가까운, 아니 무슨 고등학생이나 읽을만한 영어 학습서를 리뷰하냐고요?

아 이책은 영어 학습서가 아닙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한국어 번역론인 동시에 문화론적 맥락에서 읽어줬으면 하는 책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순히 영어 번역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에요.

왜 문화론적 맥락이냐고요? 일단 여러분 아래 3개의 영어문장 간단히 해석해 보실래요?
a) a big school with over 2,300 students
b) the concrete slabs represent the millons of Jewish people killed by Nazis.
c) the nose of an elephant is long.

각각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a)는.  2,300명이 넘는 학생을 가진 학교
b)는, 콘크리트 덩이는 나치에게 죽임을 당한 수백만의 유대인을 나타낸다
c)는, 코끼리의 코는 길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셨나요? 왠만한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대학생이라면 이렇게 해석하는게 익숙할거예요.
(물론 이 문장을 해석 못해 쩔쩔맨 분이 있다면... 멍청한게 죄는 아니잖아요? 희망을 가지세요...)

하지만, 정말 우리말에 맞게 번역을 하자면,

a) 학생이 2,300명이 넘는 학교
b) 콘크리트 덩이는 나치 손에 죽은 수백만의 유대인을 나타낸다.
c) 코끼리는 코가 길다.

이렇게 하는 게 맞지요.
특히 c) 문장. 이와 비슷한 노래도 있잖아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약간의 비유법만 제거한다면 코끼리는 코가 길다. 
이렇게 말하는게 한국적인 문장구성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왜 처음처럼 번역을 했냐고요? 직역을 해서 그래요.
물론 번역은 두가지가 있죠. 직역과 의역. 둘중 한개만 맞다는 건 아니에요. 
직역을 하다보면, 그 원래 언어의 좋은 표현이 들어 올 수도 있고, 글 자체의 느낌을 살려 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나친 직역위주도 좋기만 한건 아니예요. 요즘 우리말 문법파괴중, 상당한 부분은 영어 직역투때문입니다.
뭐 정말 유명한 "~~하는것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게 문제가 아니에요.
수동태적 표현, 지나친 사물주어, '~의' 의 남용, 지나친 명사적 표현, '그' 가 많이 들어가는 경향...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점점 원래 우리말처럼 생각된다는 것이 문제지요. 

정관사' the' 아시죠? 이미 알고 있는 사물에만 붙이는 'the'. 해석은 '그' 이죠?
그러다 보니 "The company hired me." 문장을 해석하면, "그 회사가 나를 고용했다라고 하시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조사 '은'/'는' 은 이렇게 이미 아는 대상을 나타낼때 쓰는 조사에요. 
그러니, "회사는 나를 고용했다." 라고 해도 충분한 거죠.

아 그럼 'a company hired me.' 와의 구별은 어떻게 하냐고요?
'이'/'가' 같은 조사는 미지의 대상을 가리킬때 쓰는 조사랍니다. 
그래서, 그냥 "회사가 나를 고용했다." 라고 쓰면 된답니다.
한 간호가가 나를 고용했다 이렇게 쓸 필요가 없고요.

그리고, "각종 야채들을 판다." 이 문장이 맞는 거 같죠? 각종 야채들이니 복수잖아요?
그런데, 각종이란 말엔 복수의 의미가 들어가니,  한국어에서는 "각종 야채를 판다." 라고만 써도 문법에 맞답니다.
마찬가지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대신, "책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라고만 써도 되는 거고요. (가지런히...)
한국어는 의태어/부사로 여러 명사가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왜 들을 빼냐고요? 한국어는 명사뒤엔 들을 잘 안 써요. 대신, 명사아닌 품사에 들을 붙이는걸 선호하죠.

They are completely clueless about concept of democracy.- >민주주의란 개념을 확실히들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확실히들 이란 말로 그들은 민주주의의 개념을 완전히 잘 모르고 있습니다. 라는 긴 문장보다 더 정확하면서도 짧게 쓸수 있답니다.

뭐 이런 등등...많은 예가 있어요. 

자 이렇게 이 책 내용을 요약해 놓은 걸 보다 보니 느끼신 점은?

전, 한국어를 잘 알아야 번역을 잘 할 수 있겠다 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가' 와 '은/는' 조사의 의미차이를 알았겠어요? 이 책 보고 안거지...

이런 식으로, 해석이 아닌 "번역"은 한국어(혹은 도착어..라고 이책에선 합니다) 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잘 할 수 있죠.
결국, 번역된 글을 읽는것은 한국사람(혹은 도착어를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영어를 모국어처럼 쓸게 아니라면.. 한국어에 맞춘 언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 보아요.

물론, 이건 글쓴이의 생각, (그리고 이책을 읽고 든 저의 생각)이니,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원어 중심의 표현으로 직역하는 것이 맞다! 이것도 틀린 생각이 아니라 다른 생각이니까요.

여기서 좀만 더 확장하면,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주체적 수용이냐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냐 라는 문제로 확장될 수 도 있겠습니다...만, 이건 각자 생각해 보세요.



혹시나 너무 긴 글이 읽기 싫단 사람들을 위한 한줄 요약.

멋진 번역을 위해서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어의 맛을 살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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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클럽에 쓴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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