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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ading

[책]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과외 학생 교재를 고르러 갔다가, 예전에 인터넷어디에선가 이 책에 대한 글(인지 기사인지 기억이 안나네;;)를 본거 같아서 
그냥 어떤 책이지? 하고 본 책 인데......

읽을 만할 가치가 있는, 괜찮게 잘 쓴 책이었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제목에서 대놓고 얘기하는 것 처럼, 야구 해태타이거즈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정치에 대한 화두를 가볍게 던지는게 이 책의 묘미.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책은 골수야구팬의 오직 야구를 소재로 한 수필에 가깝다고 개인적으로 본다. 

(정치가 싫다는 분들이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물론 정치의 정 만 봐도 지겹다는 분들이나 김대중을 증오하는 사람이라면
극저도의 김대중빠, 서민빠면서 전두환,노태우안티, 신자유주의를 은연중 반대하는 저자의 말이 많이 거슬릴 수도 있지만..)

주 소재인 야구가 메인 스테이크라면 정치는 정말 양념정도로만 언급된다.


하지만, 양념이 요리 전체의 맛과 수준을 엄청나게 올려주듯이, 
야구얘기만 있었으면 평범한 야구빠의 야구이야기정도로 잊혀졌을 책을, 내가 글까지 쓰도록 한 것은 이 양념때문이다

야구 - 8,90년대의 최강자 해태타이거즈 - 를 주 키워드로 하고
부수적으로 김대중이 상징하는 호남, 정치를 다루고 있지만, 노골적이거나 편향적이지 않아 균형잡히면서도 재미있는 책. 

이 책을 보면서 글을 재밌게, 그러면서도 가볍지만은 않게 쓴 글을 보여줬다.
수필이란, 자기의 생각을 거부감 있지 않으면서도 설득력있게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던져준 책.

기대를 하고 보지 않아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고, 재미있는 소재인 야구를 대상으로 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사람 사는 맛이, 소시민(??)의 향기가 느껴지는 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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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는, 1983~1998년 기간동안, 한국시리즈에 9번 진출해서 9번 승리한 팀이다. (최근의 기아는 뒤에서 등수세는게 빠르지만..)

그런 해태 타이거즈에게
프로야구를 첫 시작하는 때부터 삼미의 골수팬이었던 초등학생(그때는 국민학생) 저자가 느낀 감정은

- 2년 후 가을, 빙그레의 어린이 회원은 "꼴찌 응원해서 좋겠다"던 반 아이들을 실컷 약 올려준 후, 웃음을 빙그레 머금은 채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마치 신성한 행사라도 치르듯 '우리집 라면'을 끓여 먹은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꽃게랑'을 손에 쥐고,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정말 우승할 것'만 같았다. 마치 '진짜 타격의 신의 모습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이강돈은 1회말, 다른 누구도 아닌 선동열의 공을 받아쳐 담장 한가운데를 넘겨버렸다. 그 무시무시하고 징글징글하고 너무나 너무나 짜증스러웠던 해태를, 이번에는 정말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어진 네 경기에서 빙그레는 내리 졌다. 도대체 이 놈의 해태라는 팀에는 무슨 천사라도 들러붙은 건지, 선동열을 넘어서도 문희수가 있었고, 김정수가 있었고, 김성한이 있었고, 장채근이 있었고, 한대화도 있었고, 이순철도 있었다. 팀 창단 후 92년까지 무려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빙그레는, 그때마다 번번이 해태를 만나(92년은 롯데 자이언츠) 맥없이 패했다. 이건 정말이지, 호랑이와 독수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고양이와 병아리의 먹이사슬 관계였다. -

-그저 신생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빙그레를 응원했던 마음 여린 초등학생에게 당시 해태란 '왜 인간은 타인을 증오하게 되는가'라는 따위의 철학적 고민을 안겨줬던 선동열을 보유한 팀이었고, '어떤 거짓말을 해야 떡볶이사먹을 돈을 받아낼까'하는 따위를 고민하던 아이에게도 '프로야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력 평준화가 필수적'이라는, 가히 하일성 뺨칠 정도의 문제의식을 안겨줬던 팀이었다(아마도 80~90년대 빙그레 이글스와 마찬가지로 해태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나 꼴찌를 도맡았던 인천 야구 팬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특히 이부분..

- 97년까지 해태의 홈 유니폼이었던 그 촌스러운 붉은색 상의-검정색 하의 콤비는 제대로 된 팀 구성원도 채우지 못하고 출범했음에도(82년 출범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는 14명에 불과해 김성한이 선발투수로도 뛰어야 했다. 그는 프로야구 첫 시즌 10승을 거뒀다) 강자들을 차례로 거꾸러뜨린 악바리 야구의 상징이었다. -

타자지만, 부족한 선수때문에 투수까지 하면서 팀 최다승리 투수도 달성했던 김성한, 
마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동렬, 
달려라 이종범, 
선동렬이란 찬란한 태양에 가렸지만, 다른팀 에이스는 꿰어 찰수 있었던 조계현, 이대진등등의 최강의 투수진, 
그외에도 수많은 해태의 선수들...의 얘기와

그 해태의 후덜덜한 포스를 뿜어내었던 해태의 시즌및 경기들을 술술 풀어나가며,
오래전부터 야구를 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아 이사람들!! 이경기!! 이 시즌!! 하게 외치게 하면서 추억에 잠기게 한다.

하지만, 단순히 야구역사얘기, 해태만세, 이런 위대한 자들이 있었기에 해태가 승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 김봉연은 1982년 봄, 부러진 다리를 압박붕대로 동여매고 나와 홈런을 때리며 기어이 홈런왕 타이틀을 가져갔고, 1983년 여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300바늘이 넘게 꿰맨 상처를 콧수염으로 가린 채 한 달 만에 경기장으로 돌아와 한국시리즈 MVP를 챙겨갔다. 송유석은 약이 오르면 타자의 등짝이라도 후려 패며 마운드를 버텨냈고, 김정수는 삼진 아니면 사사구라는 각오로 원맨쇼를 펼쳤으며, 조계현은 홈런 맞은 코스로 똑같은 공을 다시 던지며 타자의 간의 크기를 재곤 했다.
 중견수를 보던 이순철은 상대편 선수의 거친 태클에 걸려 뒹구는 유격수 이종범에게 달려와 ‘당장 일어나라’고 호통을 쳤고, 1루수를 보던 김성한은 연습 때 후배 야수들의 송구가 건성건성 옆으로 흐르면 글러브를 접어버렸다.

1996년 봄, 새로이 팀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은 이순철은 후배 선수들을 모아놓고 비장하게 일갈을 던졌다. “올 해는 선동열도 없고, 김성한도 없다. 그렇지만 올 해 우승을 못하면, 그동안 일곱 번 우승했던 게 다 선동열과 김성한 때문인 것이 되고, 그동안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허깨비가 되는 거다.”  -  책 인용


이렇게, 해태타이거즈는 뉴욕 양키즈같은 귀공자 최강자이미지와는 다른 최강자였다.
즉, 해태에는 악이 있었고, 근성이 있었다는 것. 

여러모로, 해태는 최강자지만 영원한 약자의 편에 서 있었다는것.

이 악과 근성을 저자는 광주,호남이라는 독특한 공간안에서 찾고 있다. 
5.18사태를 겪었고, 항상 차별받아왔던 호남지방의 한이 야구에서 터졌다는 것

이 해태를 조망하면서, 덤으로 김대중을 상징으로 하는 호남을 양념삼아
80~90년대의 한국사회와 전두환,노태우, 양김, 3S정책,외환위기등을 짚고 넘어간다.

- 그랬던 해태의 영광의 시절은 97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공교롭게도 98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외환통장이 이미 바닥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차관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서민 신화의 끝이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징글맞던 해태 야구가 더 이상은 먹히지 않는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쓰러진 두 구단이 바로 호남을 연고지역으로 삼았던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였다.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해태는 쌍방울과 마찬가지로 주축선수를 모조리 타구단에 팔아넘기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김응용 감독의 말처럼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갔다". 처음부터 돈 먹는 하마로 출발했던 한국프로야구 시스템에서 열악한 재정 상태에 놓인 해태의 근성은 더 이상 발휘되지 못했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호남의 상징 김대중이 위기 극복의 기법으로 퍼뜨린 신자유주의 세례를 호남 서민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아니, 한국의 어떤 서민도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싸우던 서민의 시대가 저물면서 해태는 사라졌고, 뒤를 이은 기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해버렸다. -

이 얘기를, 골수 해태팬이나 호남지역 사람이 쓴 말이 아니라, 
골수 삼미-빙그레 팬이고, 인천태생인 저자가 하니까 더 공정성? 같은게 느껴지면서 가슴에 와닿는다.

(이 잡글을 쓰면서 글쓰는 연습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했다.. 
한참 쓴 글이 멋스러움은 저리 갖다버려서 찾을 수도 없고, 구성이 산만하면서 내용도 전달이 안된다는걸 적나라하게 느끼게 하다니ㅋㅋㅋ
과기글 과제쓸때보다 더 고민을 한거 같긴 한데 말이지.
아 블로그는 뭔가 멋드러지게 써야 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할 수 밖에 없게 된다...)